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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은 원래 강북이었다 — 을축대홍수와 성내천, 그리고 아산병원이 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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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호수를 걸어보신 분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이 큰 호수는 어쩌다 도심 한복판에 생겼을까?"

답이 놀랍습니다. 석촌호수는 원래 한강이었습니다. 정확히는 한강의 본류가 흐르던 자리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아는 잠실은, 100년 전만 해도 강북 땅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뒤집은 사건이 1925년 을축년 대홍수입니다. 오늘은 그 물난리의 기억이 어떻게 오늘의 송파를 만들었는지, 성내천과 아산병원 자리까지 이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925년, 서울에 753mm가 쏟아졌다

을축년(1925년) 여름, 며칠 사이 서울에 753mm의 비가 퍼부었습니다. 한 해 강수량의 절반이 며칠 만에 떨어진 셈입니다.

피해는 상상을 넘었습니다. 한강 기준 집계된 것만 익사 404명, 범람 면적 586㎢, 가옥 피해 약 3만 동(유실 5천, 붕괴 7천, 침수 1만 8천)이었습니다. 전국으로는 647명이 목숨을 잃고 1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났습니다.

1925년 7월 「경성부 수재도」를 보면 뚝섬, 이촌동, 용산, 영등포와 함께 잠실·송파·신천·풍납동 일대가 완전히 물에 잠긴 것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잠실이 섬이 되고, 강남이 되기까지


이 홍수가 지도를 바꿨습니다.

을축대홍수 이전, 한강 본류는 지금의 롯데월드와 석촌호수 자리를 흐르는 「송파강」이었습니다. 잠실은 그 북쪽, 즉 강북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간의 물폭탄이 지금의 한강 자리에 새 물길을 뚫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새 물길을 「신천(新川)」이라 불렀습니다.

옛 물길 송파강과 새 물길 신천 사이에서, 잠실은 이 되었습니다. 당시 잠실도는 여의도보다 넓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내내 번성하던 송파나루는 이 홍수의 직격탄을 맞고 서서히 쇠락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잠실 개발 때 옛 강(송파강)을 메우고 신천을 한강 본류로 확정하면서, 강북이던 잠실은 마침내 강남 땅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석촌호수는 그때 메우고 남은 송파강의 흔적입니다. 도심 속 큰 호수의 정체가 사실은 사라진 옛 한강이었던 것입니다.

성내천이라는 이름에 담긴 것

이 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하천이 성내천입니다.

성내천은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에서 발원해 마천동·거여동을 지나 올림픽공원 몽촌토성을 돌아 잠실철교 부근에서 한강으로 합류하는, 한강의 제1지류입니다.

이름의 유래가 흥미롭습니다. 풍납토성 안쪽의 「성내리(城內里)」 — 지금의 강동구 성내동 — 를 관통하는 물줄기라 해서 성내천(城內川)이 되었습니다. 이름 자체에 「성(풍납토성) 안쪽을 흐르는 내」라는 뜻이 새겨져 있는 셈입니다.

가장 많이 잠기던 땅 위에 선 것

풍납동과 성내천 하류 일대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상습 침수지였습니다. 을축대홍수의 최대 피해지였고, 그 뒤로도 1984년 풍납동 대홍수 등 물난리가 반복됐습니다. 한강과 바짝 붙은 저지대라는 지형 자체가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땅 위에, 1989년 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이 들어섭니다.

서울아산병원입니다. 1989년 6월 개원 당시 이름은 「서울중앙병원」이었고,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峨山) 정주영 회장이 세운 아산재단이 모태였습니다. 2002년 설립자의 호를 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현재 2,700병상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병원입니다.

물이 가장 자주 넘치던 저지대가, 이제는 전국에서 환자가 찾아오는 의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땅의 쓰임이 완전히 뒤집힌 것입니다.

※ 오해를 막기 위해 분명히 해둡니다. 정주영 회장이나 현대가 성내천 홍수를 직접 막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 글은 「물난리가 가장 심했던 땅이 오늘날 어떻게 바뀌었는가」라는 장소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특정 인물의 치수(治水) 공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넘치던 하천이 산책로가 되기까지

성내천의 반전도 극적입니다.

한때 도시화 과정에서 상당 구간이 복개(콘크리트로 덮음)됐던 성내천은, 2002년부터 시작된 복원 사업으로 다시 열렸습니다. 자연형 하천으로 되살아나면서 벌과 나비가 돌아오고, 새와 너구리까지 찾아오는 하천이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병원이 「아산」이라는 이름을 얻은 해(2002년)와, 성내천 복원이 시작된 해가 같습니다. 물에 시달리던 이 일대가 각자의 방식으로 새 이름과 새 모습을 얻은 셈입니다.

지금 성내천 걷기

오늘의 성내천은 송파둘레길의 한 축으로, 남녀노소가 편하게 걷는 산책로입니다.

· 구간 — 성내천길은 송파둘레길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코스로 꼽힙니다.
· 연결 — 올림픽공원 몽촌토성과 이어져 자연과 백제 유적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 접근 — 지하철 5호선 개롱역·거여역, 올림픽공원역 등에서 진입할 수 있습니다.

걸으면서 한 가지만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지금 이 잔잔한 물길이, 100년 전에는 서울의 지도를 통째로 바꿔놓은 물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정리

· 1925년 을축대홍수로 한강 물길이 바뀌며 잠실이 섬이 되었고, 훗날 강남이 됐습니다.
· 석촌호수는 그때 사라진 옛 한강(송파강)의 흔적입니다.
· 성내천은 풍납토성 「성내리」에서 이름을 얻어 잠실철교에서 한강과 만납니다.
· 상습 침수지였던 풍납동 일대에 1989년 서울아산병원(설립자 아산 정주영)이 들어섰습니다.
· 복개됐던 성내천은 2002년부터 생태하천으로 복원돼 지금의 산책로가 됐습니다.


본 글의 역사·통계 정보는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서울시 자료, 서울아산병원 공식 소개, 송파구청 하천 자료 등 공개 출처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사실 확인을 거쳤으나 세부 수치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