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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이야기

장마 오면 잠 못 들던 그 시절 — 송파에서 물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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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잠실이 물에 잠겼던 얘기" 하면 다들 안 믿습니다.

 

롯데월드타워 올려다보면서, 석촌호수 벚꽃길 걸으면서, 성내천 따라 러닝하면서 자란 세대한테 이 동네는 처음부터 반듯했던 곳이니까요. 잠실역 지하 상가는 언제나 뽀송했고, 한강공원 잔디밭은 언제나 푸르렀던 거죠.

 

근데요. 저는 압니다. 이 동네가 원래 물의 땅이었다는 걸.

■ 잠실은 원래 섬이었습니다

 

이건 아는 분들은 아시는 얘기인데, 잠실은 말 그대로 한강 안에 있던 모래섬이었습니다. 물길이 지금처럼 정리된 게 아니라 이리저리 갈라져 흘렀고, 그중 한 줄기가 남아 있는 게 지금의 석촌호수예요.

 

그러니까 석촌호수는 누가 파서 만든 호수가 아닙니다. 옛날에 한강이 흐르던 자리, 그 물길의 흔적입니다. 지금은 잉어 밥 주고 벚꽃 사진 찍는 데지만, 저 물은 원래 한강이었던 겁니다.

 

이 사실 하나만 알아도, 왜 이 동네가 비만 오면 그렇게 애를 먹었는지 절반은 설명이 됩니다. 물이 원래 다니던 길 위에 아파트를 세운 거니까요.

 

■ 성내천, 그 냄새를 기억하십니까

 

지금 성내천 걸어보면 참 좋습니다. 청량산에서 내려와서 마천·오금·풍납 거쳐 몽촌토성 옆을 지나 잠실철교 근처에서 한강으로 들어가는데, 왜가리도 오고 물고기도 보이고요. 올림픽공원 청룡교부터 성내교 구간은 아예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근데 70~80년대 성내천을 아는 사람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코를 막습니다.

 

바닥이고 옆이고 전부 콘크리트였어요. 비 안 오는 날은 물이 아예 없어서 바닥이 갈라져 있고, 대신 동네 생활하수가 졸졸 흘렀습니다. 여름이면 그 위로 열이 올라와서... 지금 생각하면 그 옆으로 학교를 어떻게 다녔나 싶어요. 하천이 아니라 뚜껑 없는 하수구였습니다.

 

그러다 비가 한번 쏟아지면 상황이 뒤집힙니다.

 

콘크리트 하천은 물을 하나도 못 머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비가 흙에 스며들 틈 없이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와요. 그 좁은 수로에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고, 하류 잠실철교 쪽에 도착했는데 한강 수위가 이미 높으면 나갈 데가 없습니다. 물이 역류하는 거죠.

 

성내천이 지금 모습으로 되살아난 건 2005년 6월입니다. 30년 걸린 겁니다.

■ 고수부지가 잠긴다는 건, 그냥 일상이었어요

 

요즘은 한강공원 침수되면 뉴스가 나고, 통제선 치고, 안내방송 나오고 하지요. 2022년이랑 2024년에는 미처 못 빠져나온 분들이 고립돼서 경찰까지 조사에 들어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근데 예전엔요. 그냥 여름엔 원래 잠기는 데였습니다.

 

애초에 고수부지는 설계상 "잠겨도 되는 땅"이에요. 계획홍수위 아래니까, 큰물 지면 물속에 들어가는 게 정상인 겁니다. 어른들이 "장마 지면 저긴 강이 된다"고 했고, 실제로 강이 됐습니다.

 

저희 때는 물이 빠지고 나면 그게 또 구경거리였어요. 잠실나루 쪽 둔치에 검은 뻘이 발목까지 쌓여 있고, 어디서 떠내려왔는지 모를 나뭇가지랑 스티로폼이 나무에 걸려 있고, 축구 골대가 옆으로 누워 있고. 애들끼리 "저기 봐, 저 나무 저 높이까지 물 찼었대" 하면서 손가락질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포클레인이 들어와서 뻘을 걷어내고, 잔디를 다시 깔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원상복구가 됐어요. 매년 여름의 정해진 순서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아찔한 게, 그때는 안내방송이라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물 차오르는 거 보고 알아서 나오는 거였어요. 사고가 안 났던 게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겁니다.

 

■ 반지하, 그리고 양동이

 

이 얘기는 좀 무겁습니다.

 

저지대 반지하에 살던 분들한테 장마는 계절이 아니라 재난 대기 상태였어요. 밤에 비 소리가 굵어지면 잠을 못 잡니다. 창문 밖 계단으로 물이 차오르는 높이를 계속 확인하는 거죠.

 

가장 무서운 건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아니라 아래에서 올라오는 물이었습니다. 화장실 변기랑 싱크대 배수구에서 하수가 역류해서 올라와요. 밖에서 물 막아봐야 소용이 없는 거죠. 온 식구가 양동이 들고 밤새 퍼내다가, 결국 포기하고 살림살이 들고 계단 위로 올라가던 집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송파구에서 물막이판(차수판)이랑 역류방지시설(옥내역지변)을 지원합니다. 반지하 주택은 전액 무상이고, 동주민센터나 구청 치수과에 신청하면 돼요.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물막이판이 아예 의무화됐고요.

 

이런 게 진작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 2022년 8월 8일 — "이건 옛날 얘기가 아니구나"

 

솔직히 저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물난리는 이제 옛날 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펌프장 생기고, 하수관 넓히고, 하천 정비하고. 다 끝난 줄 알았어요.

 

2022년 8월 8일에 그 생각이 깨졌습니다.

 

그날 서초·강남·송파 남부 일대에 300mm가 넘게 왔습니다. 동작 신대방 쪽은 시간당 141.5mm를 찍었는데, 그전까지 서울 공식 기록이 118.5mm였어요. 하루 강수량 381.5mm는 1920년 기록을 102년 만에 갈아치운 숫자였습니다.

 

배수시설이 부실해서 잠긴 게 아닙니다. 그냥 설계한 것보다 많이 온 겁니다. 시간당 처리 용량이라는 게 있는데, 하늘이 그 위로 부어버리면 방법이 없어요.

 

그날 뉴스를 보면서 든 생각은 "아, 우리가 물을 이긴 게 아니었구나" 였습니다. 그동안 안 잠겼던 건 우리가 잘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안 왔기 때문이기도 했던 거예요.

 

■ 그래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푸념만 늘어놓은 것 같아서 좋아진 얘기도 해야겠습니다.

 

잠실역 사거리. 여기가 오랫동안 골칫거리였어요. 도로 한가운데서 갓길까지 경사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비 오면 물이 못 빠지고 그냥 고였습니다. 우산 쓰고 횡단보도 건너다가 지나가는 버스가 만든 물벽 맞아본 분 계실 겁니다. 저는 있습니다.

 

근데 최근에 구에서 배수 개선을 했는데,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예전엔 빗물받이가 20m 간격이었는데 이걸 1m 간격으로 촘촘하게 깔았습니다. 게다가 새로 넣은 수로관이 그냥 통로가 아니라 작은 저류조 역할을 겸하게 만들었어요. 물을 빨리 빼는 동시에 잠깐 담아두기도 하는 겁니다.

 

빗물펌프장. 지금 송파에는 잠실, 신천, 몽촌1·2, 풍납, 탄천 펌프장이 돌아갑니다. 이게 큰비 올 때 빗물을 강제로 하천이랑 한강으로 밀어내는 시설인데, 특히 한강 수위가 높아서 자연배수가 안 될 때 유일한 방어선이에요. 매년 장마 전에 구청장이 직접 몽촌1 펌프장 같은 데 가서 점검하는 게 이제는 연례행사가 됐습니다.

 

성내천과 석촌호수. 성내천은 아까 말한 대로 생태하천이 됐고, 석촌호수도 한강물을 넣어서 관리합니다. 2013년에 석촌호수 수위가 0.7m나 떨어져서 물 15만 톤이 사라진 적이 있었는데(주변 대형 공사들 영향으로 결론 났죠), 그때 녹조에 악취까지 나서 동네가 시끄러웠습니다. 지금은 안정을 찾았고요.

■ 남아 있는 걱정 하나

 

이건 좀 아는 척하는 얘기인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송파구는 30년 넘은 노후 하수관 비율이 70.2%로 서울 자치구 중 1위입니다. 70년대, 80년대에 한꺼번에 개발된 동네라 관이 다 같이 늙어버린 거예요. 그리고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싱크홀, 그 주된 원인이 하수관 파손입니다. 작년 상반기 서울에서 73건이 났는데 송파가 10건이었어요. 강남 다음입니다.

 

물난리는 하늘에서 오지만, 이건 발밑에서 오는 문제입니다. 눈에 안 보이니까 더 신경 쓰이더군요.

 

■ 마치며

 

며칠 전에 비 그친 저녁에 성내천을 걸었습니다.

 

물소리가 나고, 자전거가 지나가고, 어떤 아이가 아빠 손 잡고 왜가리를 가리키고 있었어요. 그 애한테 이 하천이 30년 전엔 냄새나는 콘크리트 도랑이었다고 말해줘도 못 알아들을 겁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그냥 저 혼자 알고 있으면 되는 거죠. 이 동네가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

 

다만 하나는 기억해뒀으면 합니다. 물은 자기가 다니던 길을 잊지 않습니다. 우리가 잊을 뿐이에요. 잠실이 섬이었던 것도, 석촌호수가 한강이었던 것도, 고수부지가 원래 강바닥이었던 것도 다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장마철에 한강공원에서 안내방송 나오면, 귀찮아하지 말고 좀 올라옵시다.

 

저는 그 물을 봤거든요.

 

※ 개인적 회상을 중심으로 쓴 글이며, 강우량·시설 현황 등 수치는 언론 보도와 공공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침수 방지시설(물막이판·역류방지시설) 지원은 송파구청 치수과 또는 각 동주민센터에서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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